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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겨울, 300만 원짜리 다마스로 시작한 나의 첫 장사 이야기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트렌디한 정보라기보다는, 오직 나의 기록만으로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받기 위한 도전기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구식의 방법으로 해보려고 한다. 구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E-E-A-T 중에서도 바로 내 ‘경험(Experience)’을 바탕으로 말이다.

    최근 10년 동안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지나온 현재까지의 과정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하려 한다. 인터넷에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거창한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고, 당신과 똑같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매달 나가는 생활비를 걱정하고, 사고 싶은 것을 충동적으로 소비하기도 하는, 말 그대로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설프게 아직까지 10년 동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준비만 하며 이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7년, 32살이 넘었지만 내 손에는 한 푼도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 집 아파트, 어렸을 때 지냈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중장년 캥거루족’이 딱 내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뭘 해야 할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아버지는 레미콘 회사를 다니고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식당 일을 하셨다. 레미콘 일은 건설 경기를 많이 타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쇠락해가는 곳이라 아버지는 출근하는 날보다 쉬시는 날이 더 많았다. 사실 집안에서 부모님의 수입에 대해 한 번도 공유한 적이 없었기에, 그저 눈치껏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새로 오픈하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셔서 무척 바쁘셨다. 나는 관심도 걱정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막장 가정이었던 건 아니다. 그저 무심했을 뿐이다. 어머니는 퇴근하시면 약국에서 피로회복제와 파스를 사 오시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다음 날 본인이 일하는 식당으로 고기를 먹으러 오라고 하셨고, 아버지와 나는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날 식당에서의 아버지 모습도 떠올리면 참 원망스럽다. 식당 사장님께 뭐라도 있어 보이고 싶으셨던 걸까. 사장님과 아버지는 소주를 한 잔씩 나눠 마셨고, 아버지는 시키지도 않아도 될 메뉴를 무리해서 더 주문하셨다. 묘한 자존심 싸움의 기운이 오고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날 어머니의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고깃값을 한 끼 식사로 쓰고 나오는 병신 같은 내 모습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었는지.

    그런 삶을 살아오다 문득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운 좋게 친구의 소개로 기회가 왔다. 한두 달 정도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필요한데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게으른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적당한 기간이라 냉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사 현장에서 땀 흘려 300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우연히 친구와 함께 저녁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졸음쉼터에 잠깐 쉬게 되었다. 그곳 벽에 붙어 있던 한국도로공사의 ‘졸음쉼터 청년창업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친구와 함께 쓸데없이 부푼 꿈을 꾸며 지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최종 합격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300만 원을 털어 중고 다마스를 샀다. 고속도로에서 장사를 하려면 짐을 싣고 출퇴근할 차량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연료는 LPG였는데 리터당 700원 정도였다. 당시 휘발유가 1,4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무척 저렴했다. 그렇게 한국도로공사의 관리하에, 나는 반 주도적으로 첫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오픈 날이었던 12월의 어느 날은 유독 추웠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다 보니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졌다. 푸드트럭에서 사용할 생수를 직접 떠서 차량에 싣고 출근했는데, 기온이 너무 낮아 워터펌프가 고장 나는 등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날의 첫 매출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10만 원대였다. 2017년도 최저시급 기준 8시간 일당이 5만 원이었으니, 친구와 둘이서 올린 매출 치고는 엉망이나 다름없었다. 저조한 매출이 지속되자 결국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몇 달 못 가 그만두었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이윽고 봄이 찾아왔지만 매출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 졸음쉼터는 대개 상하행선에 모두 위치하고 있어서, 반대편 하행선에도 나와 같은 날 합격해 장사를 시작한 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주변에 먼저 시작한 지인의 권유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그 지인의 매장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매출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마주 보고 있던 동생의 매장 역시 매출이 영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 겨울부터 온갖 생고생을 다 해왔는데,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 했다. 나는 손님이 오지 않는 푸드트럭 안, 작은 낚시 의자에 쪼그려 앉아 끊임없이 고민했다. 퇴근 후 집에서는 포토샵으로 매장에 붙일 새로운 메뉴 홍보 포스터와 메뉴판을 정성껏 만들었다. 집에 프린터가 없어 근처 PC방에 가 한 장에 500원씩 주고 출력해 붙이는 것은 퇴근 후 일상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정작 나는 발을 동동구르며 내가 아닌 손님들만을 위해 작은 푸드트럭 안에 전기난로를 놓았고, 더운 여름에는 당시 한국에 출시되지도 않았던 13,000 BTU 규격의 LG 창문형 에어컨을 미국 아마존에서 직접 직구해다 설치했다. 방문하시는 기사님들이 점심시간에 기다리는 동안 뉴스라도 보실 수 있게 소형 TV도 직접 달았다. 메뉴도 특별하게 꾸몄다. 커피는 자판기가 아닌 매장용 2구 커피머신을 들여와 내렸고, 간식류는 버거, 순대, 오뎅, 핫바, 김밥을 거쳐 결국 남들 다 하는 토스트로 정착하게 되었지만 위생은 물론이거니와 소스와 각종 시럽, 사소한 물티슈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

    매출이 적을 때는 하루 5만 원도 되지 않았지만, 장사가 안된다고 문을 닫고 쉽게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지금도 문득, 그때의 어린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주기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해 주시던 손님들이 기억난다.

    지금 내 아이폰 연락처에는 “노란선글라스 토스트 2개”라고 저장된 분이 있다. 지금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분이 노란 선글라스를 쓰신 게 아니라 지금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MAN 트럭의 ‘골든 토파즈’ 색상 트레일러를 타고 다니셨던 것 같다. 도착하기 10~15분 전쯤 전화로 “조금 있으면 도착하니까 2개만 만들어줘” 하고 주문하시던 기사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셨던 것 같은데, 금요일 저녁 마감 직전에 항상 오셔서 남은 오뎅을 전부 맛있게 드시고 가시던 손님까지.

    그분들이 내 매출에 직접적으로 엄청난 큰돈을 보태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친 고속도로 위에서 홀로 버티던 나에게, 그분들이 넌지시 건네주신 응원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자 버팀목이다.

    아직 할 이야기는 많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최대한 시간순으로 작성해보려고 한다. 일단 미뤄왔던 나라는 자신을 인터넷에 업로드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 디지털 노마드 시작

    안녕하세요 디지털 노마드를 시작했고 도서관과 사무실에 첫 출근했습니다.

    게시글로 올려야할 내용을 페이지에 올려버려 다시 업로드했습니다.

    아직 사용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 서투네요.

    점심 식사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와 공공 와이파이 연결해서 다시 일을 시작해 봅니다.

    26.7.8일

  •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준킴의 블로그입니다